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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만에 영화를 봤다.
중간에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혼자서 본 일은 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자면 끝도없는 자기 변명의 나락속에 빠지고 말 상황속에 영화라는 하나의 취미를 잃어버리고 산지가 벌써 8개월이나 됐다는 사실에 약간의 기대와 설래임을 가지고 영화를 봤다.

하지만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일반적인 영화의 일반적인 런닝타임이라는 것이 누가 세운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그 기준을 넘는 시간을 극장에 앉아있는 내내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 그리고 이어지지 않는 스토리, 수 많은 화제와 정리되지 못하는 구성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와야 했다.

대체 왜 박쥐였을까?

영화를 보고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박쥐라는 영화를 보고 난 아쉬움에 대해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송강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뱀파이어한테 물린것도 아니고 불가항력으로 뱀파이어가 된 것이니 내 책임이 아니다" 라고...

잠깐 그럼 뱀파이어한테 물린것이 아니라면 책임지지 않고 "이제 저는 모든 욕망을 갈구합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신부라는 직업까지 포기하며 욕망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불가항력으로 뱀파이어가 된 경우는 수 많은 뱀파이어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설정이다.
블레이드에서 낯귀신은 임신중인 어머니가 뱀파이어에게 물리는 바람에 불가항력으로 뱀파이어가 됐으며 다른 뱀파이어들이 낮에는 활동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것과 반대로 낮에도 활동할 수 있지만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선 결코 사람을 물지 않았다.

영화속의 송강호 또한 곰곰히 생각해 보면 뱀파이어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할 환자에게 기도를 해주면서 손가락을 핥으며 자기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다가
자기 스스로 어찌하지 못할 욕망에 사로잡혀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의 피를 직접도 아니고 정맥과 연결된 주사관을 통해 마시며 자기가 뱀파이어라는것을 확인한 즉시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창문으로 몸을 날린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우리가 그동안 목격해온 수많은 뱀파이어들은 불사신이며, 초인을 넘어선 괴물인 것을...
우리가 머릿속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죽지 않기에
마늘을 먹이고, 심장에 말뚝을 박고, 성수를 뿌리고, 십자가를 드리밀며, 태양을 보여줘 구태여 죽여내던 것을 
수도없이 보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 영화의 본질은 누군가가 뱀파이어가 됐고 뱀파이어가 된 다음 어떻게 살아간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욕망과 그 갈등에 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하필 가장 깨끗하고 고결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성직자가 뱀파이어가 되며
그 사람을 더럽히기 위한 곳곳에 설치된 설정들...

성직자 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유혹과 욕망 하지만 종국에는 회계하고 반성하는 인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영화 곳곳에 설치된
자극적인 요소들 보다는 인간 내면에 다가가기 위한 설정을 늘리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신념을 어기는 인간 송강호와 그 인간을 꼬득이는 김옥빈 그리고 그들 사이에 최후의 양심으로 작용하는 신하균의 조화를 이끌어내기엔 2시간 30분으로 모자른듯 한 영화.

박쥐














단지... 일상....

from 분류없음 2009/03/23 01:31


아직 다 나은건 아니야.
가슴이 아플때도 , 머리가 아플때도 , 마음이 아플때도 , 몸이 아플때도 있어.

온통 아프다는 것으로 수식해야만 하는 것들을 달고 살지만
단지 일상으로 돌아온 척하는 것 뿐이야.

아파.
아직은...

많이 아파...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온종일 생각해봐도 모르겠는때가 많아...

하지만 어쩌겠어

아픈것도 짊어져야 한다면... 아픈게 내 일상이면 되는거지 뭐...
단지 연락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단지 혼자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단지 가슴아픈 날들이 지나기고
단지 하루하루 시간이 흐른다는...

그것들을 제외하면

난 예전과 같아.

너무 짙은 화장위에 웃는 얼굴을 그려서
소리내지 않고는 우는지 모르는 광대처럼...

난 예전과 같아...

예전에도 지금도 소리내어 울지는 않으니까...








어쨌거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래

사회적 이라는 무미건조한 단어 하나로 인간을 통칭하고 정의내린다는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하지만 사회적 동물임엔 틀림 없다고 하니 거기에 반한다면

난 또 독불장군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될 뿐이야.

웃기는 짓이야 사람들이 산다는건.
어느 누가 됐건 얼굴에 가면 한두개쯤은 쓰고 살아가는 세상.

진심어린 친구도, 고민나눌 친구도, 돈이많은 친구도, 술을 잘 먹는 친구도, 남부럽지 않게 놀아본 친구도
난 다 가졌지만
그렇다고 그들도 결국 마지막 얇디 얇은 거의 투명에 가까운 가면 만큼은 벗지 않아.

나?

나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가면이 싫어
갑갑하고 답답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눈뜨고 눈 감는 그 모든 일과가 다 거짓인것만 같게 느껴지는
이 빌어먹을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아.

사회에서 벗어났던 그때, 내가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던 그 때, 세상이 끝나길 바랬던 그때.
그때의 내가 지금을 돌아본다면 다 부질없다고 느끼겠지만...
통제가 불가능한 육체는 살아 움직이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한거야.

내 정신으로 살지 못했던,
그렇다고 변명하지도 못했던,
이렇게 하는게 맞는거야 라고 자위했던,
생전 처음 누구에게도 하소연 하지 못할 억울함을 느꼈던...

근데 어떻게 하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기억이 돌아오는데...

하루종일 쉬지않고 수오 마사유키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만 돌려보고 있는 내 심정을 이해해줄 사람은 없을것 같아 아쉬워.

어떻게보면 그건 내가 그렇게나 갑갑해서 싫어하는
다른 가면으로 내 얼굴위에 놓여있으니까...

기쁘게 써야할까?
감사히 써야할까?
겸허히 써야할까...

기쁘게, 감사히, 겸허히...
어떻게 난 받아들인다의 수식어들만 생각하고 있는걸까...

바꿀수는 있을까,
바꿔지긴 할까.

빌어먹을 세상.
평생에 한번뿐일 안타까운 용기는 왜 다시 나지 않는걸까.

맞아.
어차피 그때 그건

나 혼자에게만 용기이고 도망일 뿐...
내 주위에 사람들에겐 슬픔이고 아픔이었겠지...

내 편안함과, 내 행복과 맞바꾼 주변의 슬픔과 아픔...
그렇다고 그렇게 바뀐건 내겐 불행이고 절망일뿐 주변엔 단지 관심이고 염려일뿐인데...

세상은 불공평한거야, 세상은 안타까운거고, 세상은 슬픈거야...
새장속에 갖힌 새는 나는 법을 잊어버리고
개줄에 묶인 개는 어느순간 도망치는 법을 잊어버려.

어떻게 나는건지... 어떻게 도망치는 건지 기억이 나질 않아...
단지 도망쳐야 한다 날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득한데...

가슴이 아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의 내용을 빌리자면
어떤 누가 내 내장 가장 깊숙한곳 가장 추악한 냄새 까지도 맡아 내고 있는데
그 더럽고 역겨운 기분을 뿌리쳐낼 힘도 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기분이야.

나는 진심이었는데,
나는 처음이었는데,
나는 ...
나는 ...
나는 ...

왜? 가 사라진 세상은 힘들고 힘들 뿐이야...
왜? 는 누가 똑똑똑 하고 두들겨 줘야 나오는 건데...
그 누구도 왜?를 원하지도, 알고싶어 하지도 않으니까...

왜? 가 사라진 세상은
힘들고... 힘들 뿐이야...